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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anghwa
4 관리자 2015-05-22 246
한겨레(2014년 05월 25일), "소설로만 쓸 수 없는 분단소설"(『전쟁을 이긴 두 여인』)
소설로만 쓸 수 없는 분단소설
 
김윤식의 문학산책
-홍상화씨의 두 소설에 부쳐

 
<외숙모>와 <어머니> 두 단편을 내면서, 고희를 넘어선 작가 홍상화씨는 자녀들에게, 너희들이 읽어줄 소설이라 하고 “내 사후에 남을 소설”을 썼다고 자부한다고 했소. 장편 <피와 불>(1989), <거품시대>(1995) 등을 저만치 제쳐 두고 씨는 어째서 달랑 단편 두 편을 그토록 자부해 마지않았을까. <외숙모>부터 보기로 합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외삼촌이 부모의 권유에 따라 6·25 이전에 혼례를 치렀다. 신부는 대구에서 좀 떨어진 능바우의 몰락한 홍씨 가문의 처녀. 외삼촌은 곧 서울의 대학에 갔고 6·25가 났다. 의용군으로 끌려간 외삼촌은 소식이 끊길 수밖에.
 
6·25가 나자 작중 화자인 ‘나’는 어른들 배려로 능바우의 외숙모에게 보내졌다. ‘나’는 거기서 외숙모와 일 년 반을 지내며 <인민항쟁가>와 <적기가>를 아이들과 함께 부르고, 밤이면 초롱불 아래서 공부도 하고 외숙모와 얘기하기를 즐겼다. 독수공방의 외숙모에겐 큰 위안일 수밖에.
 
그런 어느 날 ‘나’의 부모가 데리러 와 대구로, 서울로 갔다. 어른이 된 ‘나’는 작가가 되었고 남북 적십자 회담 소식이 신문에 난 어느 날 돌연 외숙모의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작가 홍상화 씨예”라고. 외숙모는 혼자 살아오면서 동네 부인들과 서울 구경을 왔다는 것. 달려가 만나자 환갑 지난 외숙모였다. 이산가족 상봉도 그녀는 거절했다. 옛 신랑을 지금 만나 뭣하겠는가. 거기서 자식 낳고 잘 살면 되지, 라고.
 
이런 내용이란 누가 보아도 범속한 것. 그러나 만일 이것이 실화라면 어떠할까. 그 외삼촌은 어떻게 되었을까. 홍씨의 데뷔작 장편 <꽃 파는 처녀>를 나는 자세히 분석했고 홍씨가 시나리오를 쓴 영화 <피와 불>을 대한극장 시사실에서 본 바도 있소. 북한의 대형 뮤지컬 주연 무용수가 홍영희. 북한에서 제일 많이 사용하는 화폐 1원짜리에 초상화가 새겨진 홍영희. 바로 홍상화의 재종 누이. 이쯤 된 터라 소설로만 쓸 수 없는 분단소설이 홍씨에겐 핏속에 흐르고 있었다고 할 수 없을까.
 
단편 <어머니>는 정작 외삼촌을 부각시키고자 한 것. 태중 아이를 팽개치고 이북으로 간 중등교사가 북한에서 고위층이 되었다면 어떠할까. 거기서 재혼하여 자녀를 둘이나 두고 살고 있다면 어떠할까. 그런데, 아니, 그럴수록 남한에 두고 온 유복자가 궁금할 수밖에. 혈육지정. 정보를 통해 안 사실은 그 유복자는 아들이었고 그 아들이 그럴 수 없이 보고 싶었다면 어떠할까.
 
그 유복자 모친은 어떻게 되었을까. 강원도 춘천에서 보신탕 장사를 하고 있소. 모친을 찾아가 편지를 내보이자 모친 왈, 흥 무슨 놈의 혈육지정! 시상에 빨갱이가 뭐라카노! 그러면서도, 아버지를 만나러 중국으로 갈 아들에게 억지로 여비를 주지 않겠는가.
 
2001년 7월 나는 단체 여행으로 지린성 지안(集安)에 갔고 거기서 폐허와 다름없는 광개토대왕비 앞에서 사진도 찍고 막걸리도 마셨소.
 
홍상화씨가 보이지 않더니 잠시 후 나타나 몰래 내 손에 쥐여준 것. 북한 1원짜리 지폐 한 장.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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