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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anghwa
46 관리자 2022-08-08 64
홍상화 ‘선진 한국의 아버지’, 박정희의 독백으로 현대사 균형적 통찰 (문화일보)
실제 역사 들여다보며 진실을 다면적으로 살핀 픽션 작업  
“박정희 과오 있으나 오늘 우리를 있게 한 공로를 봐야”  
“30-50클럽에 가입한 우리 국민이 미래를 환히 열어가길”


홍상화 소설 ‘선진 한국의 아버지(한국문학사 발행)’는 실존 인물 박정희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부제 ‘그가 남긴 유언’에서 그가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그가 10ㆍ26 사건 당시 총격을 당한 후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14분 동안의 독백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소설은 궁정동 만찬이 시작된 시간부터 그가 국군서울지구병원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실제 사건의 전개 과정을 묘사한다. 숨 가쁘게 펼쳐지는 역사적 장면들 사이로 그의 독백이 터져 나오는 형식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떠도는 박정희의 혼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호명하며 내뱉는 독백은 소설의 부제에서처럼 유언의 절절함을 느끼게 한다.

“운명의 신이여! 어디서, 어떻게 죽느냐가 군인의 운명. 전쟁터의 포화 속에서 전우와 같이 장렬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면, 차가운 감방에서 고독 속에 최후를 장식할 수 있게 해 다오. 그것도 자비로운 것이라면 노년의 병마를 마지막 전우로 삼아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인생을 끝마치게 해 다오.” (27쪽)

그의 독백은 주석(酒席)에서 탕아처럼 죽음을 맞이한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인자한 아버지, 애정 어린 남편이 되고자 했으나 그걸 지키지 못한 회한도 품고 있다. 자신에게 혹독한 탄압을 받은 정치인들의 환영에 시달리며 자유를 유보하고 독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한국의 현실에 대해 절절하게 토로한다.

이런 독백은 불세출의 리더십을 발휘했던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문학 작품 특유의 쾌감을 선사한다. 셰익스피어 희곡의 대사들처럼 운문의 운율을 지니면서 삶의 희·비극적 측면을 두루 살피게 한다.

‘선진 한국의 아버지’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소설은 작가의 뚜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박정희라는 인물이 한국사에 미친 긍정적 영향을 이 시점에서 되새겨 미래를 열어가는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 1960년대 세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세계 정상급 국가로 성장한 것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 덕분이지만, 그것을 끌어내 도약을 이뤄낸 박정희 지도력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 메시지의 핵심이다.

작가는 책 머리말에서 “박정희가 주도한 쿠데타와 그 뒤에 이어진 독재와 권력의 횡포는 분명 부끄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이다” 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적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제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이 전 세계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내세우고 싶지 않은 굴곡진 역사조차도 미래의 성장을 위해 필연적으로 거쳐야 했던 역사 속의 폭풍의 계절로 받아들이는 너그러움과 아량을 우리 민족이 가질 때도 되었다.”

작가는 박정희가 이 땅을 오랫동안 지배했던 패배주의 독사를 몰아냈다고 본다.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냈다는 것이다. 소설 속 박정희의 독백은 그러한 시각을 여실히 전한다.

“보릿고개를 모르는 농민들의 미래, 초가지붕이 없는 농촌의 미래, 거지와 빈민이 사라진 도시의 미래, 아시아의 군사 강국으로 발돋움한 조국의 미래, 푸른 들판으로 변한 조국 산야의 미래, 선박과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조국 산업의 미래, 천시받는 국민이 아니고 존경받는 국민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한국 국민의 미래…… 나는 이 모든 것을 조국근대화, 민족중흥, 자립경제, 자주국방이라 부르고 과거라는 독사와 맞대결하기로 한 것이오.” (50~51쪽)

“착한 사람들이여! 이것을 내 작별의 말로 받아들여다오. 나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 그 누구이든 간에,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외로운 통치자의 서글픈 임종을 기억해다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당신들이 주는 그 어떤 원망과 저주도 저승에서나마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그리고 먼 훗날, 그곳에서 아시아의 강국으로 성장한 한반도를 내려다보며 맛볼 수 있는 기쁨이 있다면 그 기쁨을 너희들 모두에게 돌려주겠다. ”(57쪽)

이 소설은 1997년에 세상에 공개된 바 있는데, 이번에 재출간됐다. 본문 일부를 수정하고, 관련 자료들을 다양하게 덧붙였다. 10·26 사건 개요와 박정희 생애 연보가 책 맨 앞에 있어 작품 이해를 돕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용어와 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주석이 작품 뒤에 붙어 있다. 부록 자료가 2부로 돼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박정희의 ‘경제 자립’, ‘농촌 근대화’, ‘자주 국방’, ‘문화 과학 개발’, ‘통일에의 의지’를 다룬 신문 기사를 수록했다. 두 번째는 ‘세계 속 오늘의 한국’을 보여주는 각종 지표를 게재하고 해설했다. 경제력, 평균 수명, 대학진학률, 한류 콘텐츠 지표들을 2020년 현재로 볼 수 있어서 흥미롭고 유익하다.


책 맨 뒤에는 남북한 비교 지표가 있다. 국방비, 국민 소득, 국내총생산, 경제성장률, 무역총액, 주요 무역국, 인구 추이 등 다양하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작가가 책 머리말에서 탄식한 것에 공감이 간다.

“우수한 민족을 아프리카의 ‘가나’나 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보다도 못한 위치로 추락시킨 가문이 있다. 그 누구도 아닌, 광복부터 현재까지 3대에 걸쳐 75년동안 철권으로 북한을 통치하고 있는, 김일성을 수장으로 하는 김 씨 가문이다.”

홍 작가는 “최근들어 남한에서 어찌된 일인지, 김일성의 자서전(전 8권)을 거액을 들여 출판하려는 패거리가 나타났다”며 개탄한다. “왜곡되고 편파적이며, 극도로 미화된 김일성의 자서전이 국내 출판시장에 나오는 것을 무력하게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고민 끝에 박정희의 독백을 담은 픽션을 재출간하게 되었다” 라는 게 작가 설명이다. 그러니까, 박정희를 바라보는 편향된 시각을 바로잡는 동시에 김일성 왕조의 미화를 경계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20년 전에 씌여졌음에도 마치 오늘의 한국 정치에 주는 경고처럼 읽힌다. “정치꾼들아! 거간꾼들을 동원해 장터를 벌여놓고 민주주의란 허망한 단어로 착하고 어진 국민들의 땀에 젖은 돈을 후려내려는 그대들! 이것을 내 마지막 경고로 엄숙히 받아다오. 그대들끼리 물고 물어뜯기는 아수라장 노름판에 대해서는 내가 뭐라고 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판에 순박한 사람을 끌어들여 타락시키지는 말아다오. 그 약속만 지킨다면 다른 것은 눈감아 주겠다. 그러니 제발 민족의 장래와 민족의 고통을 판돈으로 걸지는 말아다오.”

홍 작가는 우리의 미래 세대가 자조에 빠지지 않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그가 지난 2019년에 펴냈던 소설 ‘30-50 클럽’(영문판은 ‘30/50 Club: A Dialogue on S. Korea, U.S., China, and N. Korea’)은 우리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삼고 있다.

작가는 한국이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이면서 인구 5000 만 명 이상인 국가를 뜻하는 ‘30-50’클럽에 일곱 번째 나라로 들어가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30-50’ 클럽의 기존 멤버인 미국,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는 모두 원주민이나 식민지를 착취해 자본을 쌓은 제국주의 국가였지만, 한국은 그러기는커녕 피식민지로서 혹독한 착취를 당했던 국가였다.

그런 과거를 가진 한국이 오늘날 이만한 성취를 이룬 것을 특별히 강조한다. 이는 한국 민족의 우수성, 근면성 덕분이지만, 그것을 이끌어낸 것은 역대 한국 대통령들의 리더십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시각이다. 역대 정부의 지도력은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한국 민족의 저력을 인도하는 측면에서 각각의 장점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달라면서 “ 역대 모든 정부의 성취들이 모인 것이고 결국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국민이 노력해서 이룬 성취”라며 자신과 반대편 정부의 업적까지 인정한 것은 홍 작가의 ‘30-50 클럽’ 시각과 맥락을 함께 한다.

홍 작가는 한국이 ‘30-50 클럽’에 들어갈 수 있었던 요인을 자세히 살피며 그것을 확대·발전·계승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국제 역학 관계를 잘 다스려서 ‘40-50클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당대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미래 세대에 ‘최악의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 된다고 경고한다.

한편, 홍 작가는 우리 사회의 성공과 그늘을 함께 조망하면서 그 진실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치는 소설들을 발표해왔다.
그는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다수의 기업을 일군 바 있다. 1989년 장편 ‘피와 불’(‘정보원’으로 개제)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 작품을 영화로 각색해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최우수각본상을 수상했다.

고도성장의 이면을 들여다본 소설 ‘거품시대’를 조선일보에, ‘불감시대’는 한국경제신문에 연재했다. 장편소설 ‘정보원’ ‘사람의 멍에’ ‘범섬 앞바다’ ‘디스토피아’를 펴냈다. 소설집으론‘전쟁을 이긴 두 여인’, ‘우리들의 두 여인’, ‘내 우울한 젊음의 기억’ 등이 있다. 2005년 소설 ‘동백꽃’으로 제12회 이수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문예지 ‘한국문학’ 주간과 인천대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를 지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문화일보, 2021년 11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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